주말 밤 침대에 누워 전자책 앱을 켠다. 무언가 읽고 싶어서라기보다 손이 심심해서다. 서재 화면을 위로 밀어 올리다가 표지 하나에서 손가락이 멈춘다. 분명 내가 산 책인데 언제 샀는지, 왜 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목조차 낯설다. 그날의 나는 이 책을 꼭 읽을 사람이었을 텐데, 지금의 나는 그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다.
종이책이라면 그래도 사정이 낫다. 책장에 꽂혀 있으면 매일 눈에 밟히고, 먼지 쌓인 책등을 볼 때마다 은근한 죄책감이 든다. 그 죄책감이 가끔은 등을 떠밀어 한 권을 펼치게도 한다. 전자책은 다르다. 폴더 안에 파일로 잠들어 있으니 눈에 보이지 않고, 산 사실조차 흐려진 책은 죄책감마저 주지 못한다. 반성할 대상이 아예 시야에서 사라지는 셈이다.
책만 그런 게 아니다. 스팀 라이브러리를 열어 보니 보유한 게임이 104개, 누적 플레이 시간이 2,060시간이었다. 숫자만 보면 꽤 부지런히 논 것 같지만 상태별로 나눠 보면 얘기가 다르다. 81개는 하다가 그만뒀고, 20개는 설치만 해 두고 단 한 번도 실행하지 않았다. 오래, 제대로 붙잡고 판 건 겨우 3개다. 세일 알림이 뜨면 장바구니에 담고, 며칠 뒤 결제하고, 라이브러리에 아이콘이 하나 늘어나는 걸 보고 만족한 뒤 다시는 켜지 않는 패턴이 104번 중 101번 반복된 셈이다. 사는 사람과 하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갈라질 일인가 싶다가도, 책장의 안 읽은 책들과 정확히 같은 그래프라는 걸 깨닫는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산다. 시작은 대개 세일이다. 반값이라는 글자를 보면 지금 안 사면 손해라는 감각부터 든다. 그 감각은 책의 내용과 거의 상관이 없다. 읽을 시간이 있느냐가 아니라 이 가격이 언제 또 오느냐가 판단 기준이 되고, 결제 버튼을 누르는 짧은 순간 작은 승리감이 남는다.
그 승리감 뒤에는 미래의 내가 서 있다. 이 책을 사 두면 언젠가 더 부지런하고 더 사려 깊은 내가 이걸 펼칠 것이라 믿는다. 책을 사는 일은 그 미래의 나를 향한 예약이다. 문제는 예약한 날이 좀처럼 오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기다리는 사이에도 예약이 계속 쌓인다는 것이다.
가장 은밀한 이유는 따로 있다. 책을 사는 순간 이미 조금 읽은 듯한 착각이 든다. 제목을 고르고 소개 글을 훑고 결제를 마치면, 그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아는 기분이 된다. 사는 행위가 읽는 행위를 대신해 버린다. 나는 지식을 산 것이 아니라 지식을 가진 사람이 된 기분을 샀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국민독서실태조사를 보면, 성인 종합독서율이 38.5퍼센트로 1994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저치를 찍었다. 성인 열 명 중 여섯 이상이 지난 1년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뜻이다. 연간 독서량도 2.4권으로 전년 3.9권에서 1.5권이 줄었다. 정작 독서를 못 하는 이유 1위는 '일이나 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25.7퍼센트), 2위는 '책 이외의 다른 매체·콘텐츠 이용'(24.3퍼센트)이었다. 사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고도 다른 데 밀려 못 읽는다는 얘기다.
이 현상에 이름을 붙인 건 한국이 처음은 아니다. 일본어에는 사두고 읽지 않은 채 쌓아둔 책을 가리키는 積ん読(쓴도쿠)라는 말이 메이지 시대(1868~1912)부터 있었다. 나중에 읽으려고 쌓아두고 방치한다는 뜻의 츤데오쿠(積んでおく)에 독서(読書)의 도쿠가 겹쳐진 말장난이다. 이 단어는 최근 영어권에서도 그대로 tsundoku로 차용돼 케임브리지 영어사전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렸다. 100년도 더 전 일본에서, 최근 영어권에서, 그리고 지금 한국의 통계에서 같은 무더기가 각자의 이름과 숫자를 얻은 셈이다.
이 무더기를 아예 자산으로 여긴 사람들도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개인 서재에는 책이 3만 권 있었다고 한다. 나심 탈레브가 '블랙 스완'에서 전한 일화에 따르면, 에코를 찾아온 손님은 두 부류로 갈렸다. 서재를 보고 "이 책을 다 읽으셨어요?"라고 묻는 다수와, 그 서재가 과시용 진열장이 아니라 연구 도구라는 걸 알아보는 극소수. 탈레브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안 읽은 책의 무더기에 반서재(antilibrary)라는 이름을 붙였다. 읽은 책은 안 읽은 책보다 가치가 훨씬 적다고,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안 읽은 책의 줄은 오히려 길어진다고 썼다.
내 서재의 잠든 파일들이 전부 연구 도구라고 우길 생각은 없다. 다만 적독이 게으름의 증거이기만 한지는 의심하게 됐다. 내 기록에서 가장 오래된 실패는 2012년 4월 3일 자다. "화폐전쟁 읽어보기 → 실패." 실패라고 내 손으로 적어 뒀다. 14년이 지난 지금도 그 책을 다 읽지 못했지만, 저 한 줄 덕분에 그 무렵의 내가 돈의 역사와 금융의 뒷이야기에 끌렸다는 사실만은 남았다. 시도하지 않았다면 그런 마음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없었을 것이다. 쌓인 책은 게으름의 증거인 동시에 한때 품었던 호기심의 목록이다. 한 번도 실행하지 않은 스팀 게임 20개도 다르지 않다. 결제하던 순간 품었던 마음, 이걸 해보고 싶다는 충동만은 라이브러리 목록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읽히지 않은 책이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호주국립대의 조애나 시코라 연구팀이 31개국 성인 16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더니, 16세 때 집에 책이 80권쯤 있던 사람은 어른이 된 뒤 문해력이 평균 수준에 이르렀고, 350권을 넘어서면 더 늘지 않았다. 조사에서는 책장 선반 1미터를 책 40권으로 환산해 물었다고 한다. 더 재미있는 대목은 따로 있다. 책 많은 집에서 자랐지만 학교를 일찍 그만둔 사람이, 책이 거의 없는 집에서 자란 대졸자와 어른이 된 뒤의 문해력과 수리력이 비슷했다. 그 집의 책들이 다 읽히지는 않았을 텐데도 그랬다. 책은 읽히기 전에도 그 집의 공기와 습관으로 일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요즘은 다 읽어야 한다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안 읽은 책은 언제든 열어 볼 수 있는 가능성의 목록이고, 그 목록이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조금 넉넉해진다. 물론 목록이 무한정 길어지면 어느 것도 펼치지 않게 되니까, 가끔 서재를 훑으며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몇 권만 앞으로 당겨 놓는다. 나머지는 있어도 그만인 자리로 조용히 밀어 둔다.
사는 즐거움과 완성하는 즐거움이 서로 다른 즐거움이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책을 고르고 사는 일, 스팀 세일에서 게임을 장바구니에 담는 일에는 그 나름의 기쁨이 있고, 그 기쁨은 완독이나 클리어로 갚아야 하는 빚이 아니다. 두 즐거움을 억지로 하나로 묶으려 할 때 죄책감이 생긴다. 나는 오늘도 책 한 권을 샀고, 아마 오늘 밤에 펼치지는 않을 것이다. 라이브러리의 스팀 게임 20개도 여전히 실행 버튼 한 번 눌리지 않은 채 그대로다. 대신 독서 기록에 한 줄은 적어 둘 생각이다. 언젠가 그 옆에 완독이라는 두 글자가 붙을지, 실패라는 두 글자가 붙을지는 그때 가서 알 일이다. 어느 쪽이든 기록은 남는다.
지금 서재나 라이브러리를 한 번 열어보길 권한다. 죄책감을 느끼려는 게 아니라, 그 목록 하나하나가 한때 품었던 호기심의 흔적이라는 걸 확인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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