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님과 형 부부, 나까지 다섯이 남해 아난티 골프&리조트에서 이틀을 보냈다.
돌이켜보면 그 여행은 정말 즐거웠다. 네이버 계열의 특별한 복지혜택으로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었던 점, 객실 창문도, 저녁 식사도 모든 것이 완벽했고, 가족들과의 행복한 좋은 시간으로 이어졌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사내 복지중에 하루하루 일자별로 포인트가 쌓여 응모하는 복지가 있다. 사내에는 여러 직원이 포인트를 걸고 남해 아난티를 비롯하여 여러 객실에 응모하고 빈 날짜가 나면 나눠 갖는 방식이 자리 잡혀 있었다.
나도 거의 1년을 모아 신청을 해두었는데,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라고 생각으로 많이들 임하는 거 같다.
당첨 메일은 평범한 화요일 오후에 왔다. 사내 메일함을 열어 보니 1월 중순 이틀 일정이 내 이름으로 잡혀 있었다.
화면을 두 번 다시 읽었다. 아 이제 누구랑 가지? 당시엔 여자친구도 없고 회사 일만 열심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부모님과 친형부부가 떠올랐다.
그날 퇴근길에 형한테 전화부터 걸었다. "나 복지포인트로 남해 아난티 당첨됐는데, 부모님 모시고 갈 사람 필요해서." 형은 잠깐 말이 없다가 "진짜? 며칠인데?" 하고 물었다. 날짜를 대자 마침 형도 그 무렵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다며, 형수까지 셋이 먼저 움직이는 걸로 이야기가 정리됐다.
어머니한테 전화로 소식을 전했더니 처음엔 "우리끼리 가도 되는 거야? 너 쓸 건데" 하고 몇 번을 되물으셨다.
나는 그냥 다섯이 같이 가는 여행이라고, 내가 예약한 건 맞지만 이건 다 같이 가는 거라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가족 다섯 명이 되고 나니 두근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남해로 곧장 내려가는 대신 전주를 경유했다. KTX로 이동하는 구간과 차로 이동하는 구간을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주가 중간 기착지가 됐고, 기왕 들르는 김에 남해에서 먹을 곳을 정했다.

완벽한인생브루어리에서 여러 음식들을 시켜먹었다. 두툼한 돈가스 같은 걸 반씩 나눠 먹으며 형수가 "이 집 괜히 유명한 게 아니네" 하고 몇 번을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남해로 넘어가는 길은 꽤 길었다. 아버지는 조수석에서 반쯤 졸다 깨다 하셨고, 뒷자리에서는 어머니와 형수가 낮에 먹은 음식 이야기를 몇 번이고 다시 꺼냈다.
나는 운전을 하며 백미러로 그 풍경을 흘끗흘끗 보는 게 좋았다. 이동만으로 하루를 다 썼는데도, 다섯 식구가 한 차에 붙어 있는 시간 자체가 오랜만이라 지루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이미 여행이 시작된 기분이었다.
남해까지 넘어와, 아직 해가 남아 있을 때 아난티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로비에서부터 넓고 조용한 분위기가 느껴졌고, 체크인으로 이어졌다.

객실 문을 여는 순간 다들 잠깐 말을 잃었다.
창이 3면으로 나 있어서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바다가 보였다. 어머니는 신발도 벗기 전에 창가로 먼저 걸어가서는, 한참을 그 앞에 서서 바깥만 보고 계셨다.
"여기 뭐 이렇게 좋아"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시던 게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다섯이 함께 움직이는 여행에서는 숙소가 좁으면 금방 피곤해지는데, 그 객실은 각자 짐을 풀고 앉고 쉬는 동선이 넉넉해서 답답하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 보고는 "나 오늘 여기서 안 나갈래" 하고 말했다.

나중에 찾아보고 알았는데, 이 방은 정가로 예약하면 꽤 비싼 축에 속했다. 그때도 스위트 객실 1박이 100만 원은 가뿐히 넘는 값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검색해봐도 평일 기준으로 85만 원대라는 후기가 나오니, 성수기 펜트하우스라면 이보다 훨씬 더 나갈 거고 지금 다시 묵으려면 200만 원을 넘길 수도 있겠다 싶다. 아난티 계열 전체가 최근 몇 년 새 요금을 크게 올린 것도 알려진 얘기다.
실적이 매년 최대치를 찍는데도 리뉴얼 비용을 숙박료로 충당한다는 비판 기사를 봤는데, 가평 아난티 코드의 한 객실은 51만 원에서 62만 원으로 뛰었다고 했다. 이런 곳을 복지포인트 하나로 다섯 식구가 통째로 들어와 썼으니, 감동 받을 만 하다.
이런 식으로 리조트를 복지에 엮어두는 IT 회사가 꽤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번에 그 체감을 제대로 했다. 네이버/라인 계열이 같이 썼다. (지금은 불분명)
짐을 풀고 잠깐 쉬다가, 저녁에는 근처로 나가 먹을 것들을 포장해 왔다. 겨울이라 해가 짧아서, 숙소로 돌아왔을 땐 창밖이 이미 캄캄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부모님은 몇 번이나 "이런 데를 자식 덕에 와본다"는 말을 하셨다. 아버지는 평소 감정 표현이 많은 분이 아닌데, 그날은 창밖 야경을 보면서 "이런 방에서 하루 자보는 것도 사는 낙이지, 고맙다" 하고 드물게 길게 말씀하셨다.
정작 나는 추첨으로 당첨된 자리라 크게 준비한 것도 없었는데, 그 말을 듣는 내내 묘하게 뿌듯했다. 저녁을 먹고도 다들 잠들기 아쉬워서, 맥주와 과자를 좀 꺼내 놓고 거실에 둘러앉아 야식을 먹었다. 다섯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오래 웃었다는 사실만 남아 있다. 그날 밤은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낮에 이동한 피로 때문이기도 했지만, 창밖 바다 소리를 들으며 눕는 게 좋아서 다들 서둘러 불을 껐던 것 같기도 하다.

이튿날은 어디로 나가지 않고 리조트 안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아침은 조식 뷔페였는데, 갈비와 오믈렛, 스프까지 접시가 금세 찼다.

낮에는 다들 각자의 속도로 쉬었다. 정원 쪽으로 나가 통유리창 너머로 방을 다시 들여다보니, 어제는 안에서만 보던 바다를 이번엔 바깥에서 구경하는 기분이 묘했다.


해 질 무렵에는 다섯이 나란히 앉아 사진을 여러 장 남겼다. 그날 저녁은 다시 다 같이 모여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 여행에서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그다음 날 아침이었다. 가족들과 리조트 주변을 걸으러 나갔다.
겨울 바닷바람이 제법 매서웠는데, 아버지는 점퍼 지퍼를 끝까지 올리시고는 앞장서 걸으셨다. 하이킹이라고 부를 만큼 길게 걷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확한 코스나 거리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가족들과 함께 걷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었다는 사실 하나가 이 여행 전체를 다르게 남겼다.
평소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일이 잘 없었다. 형이 있고, 가족 모임이 있고, 각자 일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그날은 바다가 보이는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잠깐 벤치에 앉아 쉬면서 이 시간을 즐겼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회사 일로 지방 출장이 잦았다는 이야기를 하시다가, 문득 "너는 요즘 회사 다닐 만하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냥저냥이라고 얼버무렸는데, 아버지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셨다.
무슨 대단한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다. 아버지는 원래 말이 많은 편이 아니시고, 나도 그 옆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아무 일도 아닌 시간이, 별말 없이 나란히 걷기만 했는데도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무래도 효도한 적이 별로 없어서 그럴지도..)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먼저 걸음을 늦추시더니 "다음에 또 왔으면 좋겠다" 하셨다. 그 말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일하는 기쁨은 효도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다음에 또 왔으면 좋겠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야 알았다. 그동안 부모님께 여행을 시켜드린 적이 거의 없었다.
어릴 때는 늘 부모님이 데리고 다니는 쪽이었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각자 일정에 맞춰 어쩌다 한 번 같이 밥을 먹는 정도가 다였다. 이번엔 순서가 반대였다.
내가 당첨된 자리에 부모님을 모시고 갔고, 부모님은 그걸 자식이 챙겨준 여행으로 받아들이셨다.
큰돈을 들인 것도, 오래 계획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복지포인트가 당첨된 날짜에 부모님을 초대했을 뿐인데, 그게 부모님한테는 자식이 처음으로 챙겨드린 여행으로 남은 모양이었다.
나한테도 마찬가지였다. 숙소가 좋았고 전망도 좋았지만, 결국 가장 오래 남은 건 부모님이 좋아하셨다는 사실과, 아버지 옆에서 걸었던 그 짧은 오전이다.
가끔 그날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통유리창 너머로 바다가 찍힌 사진 한 장을 보면, 그 겨울 아침의 침묵과 "다음에 또 왔으면 좋겠다"던 말이 같이 떠오른다. 다섯 식구가 그날처럼 다시 다 함께 모일 기회가 자주 오지는 않겠지만, 다음에 또 이런 자리가 생기면 그때도 망설이지 않고 부모님부터 먼저 떠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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