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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서 12시간 걸려도 야간열차를 타는 이유

여행/일본여행

by 잘난코 2026. 7. 2.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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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플랫폼에 정차한 야간 관광열차와 김이 오르는 라멘 포장 용기

교토역에서 밤 9시 13분에 출발하는 열차가 있다. 다음 날 아침 9시 35분에야 신구역에 닿는다. 12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신칸센과 재래선 특급을 갈아타면 다섯 시간 안팎이면 끝낼 수 있다. 그런데 이 열차, 웨스트 익스프레스 긴가는 일부러 느리게 간다. 밤새 기이반도를 돌아 태평양 해안을 끼고 달리다가, 정차역마다 그 동네 음식을 판다. 올여름에도 이 열차가 다시 달린다. JR서일본이 7월 3일부터 9월 30일까지 왕복 24회를 편성했다.

신칸센이 닿지 않는 기이반도를 도는 법

기이반도 남쪽은 일본에서도 대중교통이 성긴 축에 든다. 오사카를 베이스로 교토·고베·나라를 묶는 간사이 당일치기 코스를 짜도 기이반도까지는 좀처럼 들어가지 않는다. 신칸센 노선도 반도 안쪽까지 들어오지 않아서, 와카야마 남부나 쿠시모토, 신구 쪽으로 가려면 재래선을 갈아타는 수밖에 없다. 이동 자체가 목적이 되기 어려운 구간이라는 뜻이다. JR서일본은 이 약점을 뒤집어 야간열차 노선으로 만들었다. 빨리 가는 대신, 가는 길 자체를 볼거리로 채운 것이다. 이 노선이 올해로 기이반도 구간 운행 6년째라는 사실이, 그 판단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교토에서 신오사카·와카야마·쿠시모토를 거쳐 신구까지, 실제 지도로 보면 반도를 통째로 빙 도는 구간이라는 게 한눈에 들어온다. → 구글 지도에서 전체 경로 보기

여행자 입장에서 보면 이 사정은 오히려 이 열차를 타야 할 이유가 된다. 신칸센 시대에도 일본에서 야간버스가 꾸준히 팔리는 이유는 속도가 아니라 숙박비다. 오사카에서 도쿄까지 야간 고속버스로 넘어가면 편도 3,500엔 안팎인데, 도쿄·오사카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 하루 값도 그 언저리다. 요금 하나로 이동과 숙박을 한 번에 해결하는 셈이니, 사실상 공짜로 하룻밤을 버는 계산이 나온다. 나도 오사카에서 도쿄로 넘어갈 때 이 방식을 몇 번 썼다. 밤에 버스에 올라 이튿날 이른 아침 도쿄에 내리면 몸은 뻐근해도 그날 낮 시간이 통째로 남는다. 신칸센으로 낮에 이동했다면 오가는 데만 서너 시간을 썼을 텐데, 그 시간을 자면서 흘려보내고 도착하자마자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야간 이동의 실질적인 이득이다. 거기에 계산으로만 설명 안 되는 부분도 있다. 해가 진 뒤 낯선 도시를 빠져나가는 창밖 풍경, 옆자리에 누가 앉을지 모르는 채 불을 끄고 흔들리는 그 시간 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긴가도 같은 계산이 선다. 기이반도 남쪽처럼 어차피 낮 시간을 다 써도 다 훑기 힘든 구간이라면, 이동 요금에 하룻밤 잠자리 값이 얹혀 있는 열차를 타는 편이 오히려 이득이다. 신구에 따로 숙소를 잡을 필요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하룻밤을 열차에서 보내고 아침에 바다를 만난다

새벽 열차 창밖으로 보이는 와카야마 태평양 해안선

야간 편성은 교토 21:13 출발, 신구 09:35 도착이다. 중간에 신오사카와 오사카를 거쳐 자정 무렵 와카야마에 닿고, 이른 아침 쿠시모토를 지나 신구로 들어간다. 반대 방향인 주간 편성은 신구에서 오후 2시(14:00)에 출발해 교토에 저녁 8시 53분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짜여 있다. 자정 무렵 와카야마 해안선을 지날 때는 이미 어둠 속이지만, 새벽에 가까워질수록 창밖으로 바다가 트인다. 열차가 신구에 닿는 시각이 오전 9시 35분이니, 도착 전 마지막 몇 시간은 해가 뜬 뒤 해안을 보며 달리는 셈이다.

신구에 도착하면 이런 곳들이 기다린다

신구는 구마노강이 바다와 만나는 자리에 있는 작은 도시다. 열차 종착역이라기보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순례길 구마노고도의 관문에 가깝다. 구마노산잔이라 불리는 세 개 큰 신사 중 하나인 구마노하야타마타이샤가 신구역에서 도보 15~20분 거리에 있다. 경내에는 수령 1,000년 가까운 나기나무가 서 있는데, 높이 약 18m로 일본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다.

시간을 더 낼 수 있다면 나치폭포까지 발을 뻗을 만하다. 낙차 133m로 일본에서 가장 큰 폭포이자, 구마노나치타이샤가 그 자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곳이다. 신구역에서 JR로 나치역까지 20분 안팎, 나치역에서 버스로 폭포 앞까지 다시 30분 정도 걸린다. 열차에서 내려 바로 서두르기보다는, 신구에서 하루 더 묵으며 구마노산잔을 도는 일정을 붙이는 편이 이 노선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정차역마다 이 열차만의 메뉴가 있다

교토에서 와카야마·카이난·쿠시모토를 거쳐 신구까지, 역마다 파는 음식과 시각을 표시한 웨스트 익스프레스 긴가 노선도

이 열차를 다른 야간열차와 구분 짓는 지점은 정차역 음식이다. 일본 기차 여행 하면 흔히 열차 안에서 먹는 에키벤을 떠올리는데, 이 열차는 아예 정차 시간을 넉넉히 잡아 승객을 역 밖으로 내보낸다. 교토발 야간 편성만 따지면 이런 정차가 두 번 있다. 와카야마역에서는 48분(23:42~0:30) 서는 동안 역에서 도보 5분 거리 라멘집이 만든 와카야마라멘을 당일 구매로 포장해 탈 수 있다. 예약은 필요 없지만, 38분 넘게 늦으면 판매 자체가 취소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쿠시모토역이다. 여기서는 참치가스버거 세트(1,750엔)를 파는데, 사흘 전까지 사전 예약이 필요하고 정차 시간도 1시간 10분(6:50~8:00)으로 길게 잡혀 있다. (카이난역의 하모즈시·하야나레즈시 같은 향토 음식은 돌아오는 주간 편성이 저녁 무렵 그 역을 지날 때 파는 것이라, 교토에서 밤에 출발하는 편성에서는 만날 수 없다.) 쿠시모토역에서는 지역 마스코트가 나와 맞이하고, 인근 명승지인 하시구이이와까지는 왕복 1,000엔짜리 임시 버스가 세 차례 오간다. 종착역인 신구역에서는 주민들이 현수막과 손깃발을 들고 열차를 배웅하는 행사도 마련된다고 JR서일본 쪽은 안내한다. 이동 수단에 그치지 않고, 정차 하나하나가 짧은 관광이 되도록 설계했다.

좌석 등급에 따라 하룻밤의 질이 달라진다

좌석은 전 좌석 지정제이고, 등급별 편도 요금은 이렇다.

좌석 등급 편도 요금(교토~신구 기준) 비고
일반 지정석(리클라이닝) 8,670엔(약 60달러)~ 가장 저렴한 등급, 좌석 자체는 넓은 편
프리미엄 개인실 ~15,380엔 하룻밤을 온전히 혼자·일행끼리
(비교) 재래선 특급 쿠로시오, 신오사카~신구 8,080엔 야간열차가 아닌 낮 이동 편도 요금

긴가 최저가 8,670엔은 신오사카~신구 구간 특급 요금(8,080엔)에 하룻밤 숙박을 얹어주는 값치고는 비싸지 않다. 개인실을 고르면 하룻밤을 온전히 혼자 또는 일행끼리 보낼 수 있지만, 리클라이닝 좌석도 좌석 자체가 넓은 편이라 침대칸 수준의 프라이버시만 기대하지 않으면 무리 없이 잘 수 있다. 예매는 JR서일본의 온라인 예약 서비스 e5489나 앱 tabiwa by WESTER, 미도리노마도구치 창구, 미도리노켄바이키 플러스 발권기에서 할 수 있고, 승차일 한 달 전 오전 10시에 발매가 열린다. 소라뉴스24에 따르면 이미 첫 회차 좌석은 매진됐다고 하니, 여름 일정에 넣을 생각이라면 한 달 전 발매 시각을 기억해 두는 편이 안전하다.

추천할 만한 이색열차

웨스트 익스프레스 긴가처럼 이동보다 그 과정 자체를 파는 이색열차는 일본에 드물지 않다.

  • 사가노 토롯코(교토): 토롯코사가역~토롯코가메오카역, 편도 약 7km를 23~26분에 걸쳐 느긋하게 달린다. 호즈강 협곡을 끼고 도는 노선이라 단풍·벚꽃 시즌엔 특히 붐빈다. 매시 정각 즈음 출발하지만 매주 수요일과 12월 30일~2월 말 겨울철은 운행하지 않는다.
  • 유후인노모리(규슈): 하카타역에서 온천 마을 유후인까지 2시간 18분, 편도 5,890엔. 하루 3회뿐이라 좌석이 금방 찬다. 초록빛 클래식 외관의 특급열차로, JR패스 소지자는 추가 요금 없이 좌석을 지정할 수 있다.
  • 시마카제(긴테츠): 오사카난바·교토·나고야에서 이세시마의 카시코지마까지 하루 1왕복만 운행하는 프리미엄 관광특급이다. 오사카난바~카시코지마 구간은 운임과 특급요금을 합쳐 약 4,100엔, 개인실을 고르면 1실당 1,050엔이 추가된다.
  • 나나쓰보시 in 규슈(JR큐슈): 2013년 데뷔한 일본 최초의 크루즈 트레인. 1박 2일 코스가 1인당 15만~40만 엔, 3박 4일 코스는 38만~95만 엔에 달한다. 규슈 7개 현을 도는 침대열차로, 긴가와 달리 애초에 숙박 자체가 상품의 핵심이다.

그중 긴가의 '정차역 음식' 아이디어와 가장 가까운 건 니시테츠가 후쿠오카 지역에서 운행하는 레일 키친 치쿠고다. 다만 성격은 다르다. 긴가가 밤새 달리는 사이 잠깐 내려서 사 먹는 야간열차라면, 레일 키친 치쿠고는 아예 정차역에 90분 가까이 머물며 그 지역 식재료로 만든 코스 요리를 즐기는 레스토랑 그 자체가 열차인 상품이다. 나는 다자이후 여행 때 이 열차를 실제로 타 봤다. 다자이후 후기에도 적었듯, 정차 시간에 역 밖으로 나가 신사를 둘러보고 제시간에 돌아와 다시 타는 구조라, 그 자체로 짧은 관광을 한 감각에 가까웠다.

저자가 다자이후 여행 중 실제로 탑승한 니시테츠 레일 키친 치쿠고, 정차역에서 코스 요리를 즐기는 규슈의 레스토랑 열차

밤새 흔들리며 라멘 한 그릇과 참치버거를 사 먹으러 정차하는 열차라는 발상이, 레일 키친 치쿠고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결이라 마음이 간다. 7월 3일 재개통이 반가운 이유다. 목적지에 빨리 닿는 게 아니라 가는 길을 늘려서 파는 여행 상품이 6년째 여름마다 돌아온다는 건, 그만큼 이 방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꾸준히 있다는 뜻일 테다.


참고: 소라뉴스24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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