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존 어윈이 신작 '영 워싱턴'을 설명하면서 흘린 문장이 하나 있다. 배우도 있었고 뗏목도 있었고 물도 있었는데, 물이 차갑지 않았다는 말이다. 조지 워싱턴이 젊은 시절 강에서 조난당하는 장면을 찍으면서 아일랜드에 50피트짜리 온수 풀을 지어놓고, 배우 얼굴과 얼음 소품만 실제로 촬영한 다음 나머지 화면은 생성형 AI로 훨씬 넓은 강처럼 늘렸다는 얘기다. 촬영 비하인드로는 나쁘지 않은 소재다. 그런데 이 얘기를 하는 어윈의 태도가 좀 이상하다. 신나서 떠드는 자랑이 아니다. 읽다 보면 조심스럽게 낱낱이 밝히는 진술서 쪽으로 기운다.
Variety 인터뷰 전체를 읽어보면 그가 AI 얘기를 꺼낼 때마다 붙이는 말이 셋으로 정리된다. 위험한 물에 배우를 오래 담가두지 않아도 됐다는 안전, 세트를 통째로 짓는 것보다 저렴했다는 비용, 그리고 이 도구가 영화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감독의 상상력을 넓혀주는 것뿐이라는 증폭. 순서까지 거의 항상 이 셋으로 온다. 100개 가까운 샷에 AI를 썼다고 밝히면서도, 군중이 몰리는 전투 장면은 엑스트라를 충분히 써서 기존 VFX로 늘렸다고 굳이 따로 구분한다. "이건 우리가 30년간 해온 방식"이라는 말도 거기 붙는다. AI를 쓴 부분과 안 쓴 부분의 경계를 스스로 도장 찍어두려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유는 있다. 어윈의 회사 Wonder Project는 Luma AI와 AI 제작사 Innovative Dreams를 공동 설립했고 직접 이끈다. 이번 촬영에도 Luma 외에 아마존 Project Nara, Magnific을 썼다. 실사 원칙을 먼저 밝히는 사람이 동시에 이 워크플로를 업계 표준으로 팔아야 하는 사업자이기도 한 셈이다.
이 경계 자체는 꽤 명확하다. 배우의 얼굴과 클로즈업 연기, 몸이 직접 닿는 부분은 실사로 찍는다. AI는 강과 바다, 전장, 말 탄 병사로 바뀐 직원 두 명처럼 화면 가장자리에만 들어간다. 새로운 규칙은 아니다. 그린스크린으로 배경을 합성하던 관행이 이름만 AI로 바뀌었을 뿐, 주연의 눈동자는 진짜여야 하고 먼 군대 행렬은 합성이어도 된다는 위계는 그전에도 있었다.
재밌는 대목은 그다음이다. SNS에서 몇몇이 특정 장면을 보고 "AI 티 난다"고 지적하자, 어윈은 그중 일부는 전통 VFX였다고 정정한다. 이 반박에서 그가 실제로 지키려는 선이 드러난다. 그는 AI를 얼마나 썼는지보다 이 장면이 AI로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를 먼저 따진다. 지키는 대상이 제작 원칙에서 인상 관리로 슬쩍 옮겨간 셈이다. AI를 썼다고 자랑하던 인터뷰가 어느 순간 AI로 오해받지 않기 위한 방어전으로 바뀐다.
여기서 할리우드가 진짜 무서워하는 대상이 보인다. AI 자체보다 'AI라고 불리는 것'이 더 위험해졌다. 로튼토마토 63%라는 어중간한 평가, 업계의 옹호와 회의론, 2023년 배우 파업 이후 이어진 초상권·일자리 논쟁이 같은 공기를 만든다. 평가가 애매하면 화면의 이상한 부분부터 말이 붙고, 그게 진짜 AI였는지 전통 VFX였는지는 이미 두 번째 문제다.
이 방어가 과민반응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근거는 있다. SAG-AFTRA 신규 4년 계약이 2026년 7월 1일, '영 워싱턴' 개봉 이틀 전에 발효됐다. 합성 배우를 쓰려면 "상당한 추가 가치"를 입증하라는 조항이 핵심이다. 어윈의 안전·비용·증폭 순서는 이 기준을 미리 통과해두려는 답변처럼 읽힌다. 비슷한 시기 마틴 스코세이지도 FLUX를 공개 지지했다가 Art Directors Guild 반발을 샀는데, 둘의 화법을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또렷하다. 스코세이지는 FLUX를 "새로운 붓"이라 부르며 도구의 가능성 쪽에 방점을 찍었다. 노동조합이 문제 삼은 건 바로 그 지점이다. 일자리 대체 우려에 대한 언급 없이 도구를 홍보처럼 말했다는 것. 반면 어윈은 정확히 그 우려를 겨냥해 말한다. 몇 개 샷에, 어느 부분에, 왜 썼는지를 먼저 밝히고 나서야 결과를 얘기한다. 같은 기술을 다루면서 한쪽은 가능성을 팔았고 다른 쪽은 우려를 먼저 방어했다. SAG-AFTRA 조항이 갓 발효된 시점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 순서 자체가 계산된 화법이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안전, 비용, 증폭이라는 3단 논리가 이렇게까지 정형화된 이유도 여기 있다. 안전과 비용은 방어하기 쉽다. 위험한 촬영을 줄였다는데, 예산을 아꼈다는데 반박할 명분이 마땅치 않다. 증폭이라는 말을 매번 힘주어 반복하는 이유는 역설적이다. 스태프와 배우가 일자리를 잃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사람들이 가장 크게 하기 때문이다. 배우들과 투명하게 소통했고 배우들이 이 도구를 좋아한다는 말도 같은 패턴 안에 있다. 신뢰를 선언하는 순간, 이미 신뢰가 의심받고 있다는 전제가 깔린다.
이 3단 논리를 읽다가 남 일 같지 않았다. 이 블로그에도 글 내용을 요약해주는 도식 이미지가 자주 들어가는데, 전부 AI로 그린다. 사진처럼 보이게 만드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이건 도식입니다"라고 알아볼 수 있게 그리는 쪽을 택해왔다. 그런데도 종종 발행 뒤에 캡션이 빠져 있거나, 반대로 실사진에 AI 생성 표시가 잘못 붙어 있는 걸 나중에 발견한다. 몇 달 전엔 네이버에 올린 글에서 직접 찍은 실사진 위에 "AI로 제작한 대표 이미지"라는 캡션이 붙어 있는 걸 뒤늦게 찾아 지운 적도 있다. 실수였지만, 이 표시를 다는 일 자체가 매번 조심스럽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어윈의 3단 논리와 다르지 않은 감정이다. 떳떳해서 밝히는 게 아니라, 안 밝혔다가 나중에 들키는 쪽이 더 무서워서 밝힌다.
지금의 타협선은 당분간 버틸 것 같다. 몸이 닿는 자리는 사람, 화면 가장자리는 AI라는 구분이 그럭저럭 선명해서다. 그런데 100개 샷이 500개가 되고 엑스트라 없이 채우던 군중이 클로즈업 근처까지 밀고 들어오면, 이 선은 누가 다시 그어야 하나. 인터뷰는 답을 주지 않는다. 감독들은 계속 증폭이라 부를 것이고, 예산표는 그 단어보다 솔직하게 움직일 것이다.
물은 있었지만 차갑지 않았다. 그 한마디가 3단 방어 논리보다 더 많은 걸 말해준다. 카메라 앞의 인간과 화면 밖의 위험 사이를 AI가 메웠고, 그 사실을 설명하는 데 인터뷰 한 편이 필요했다. 앞으로도 필요할 것이다. 다만 설명이 길어질수록 듣는 쪽은 "어떻게 했는가"보다 "왜 이렇게까지 말하는가"를 먼저 듣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인터뷰는 제작 비화보다 시대 진단문에 더 가깝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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